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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한국소설

'에메랄드 궁' 박향



세계문학상 수상작. 낡은 모텔이라는 '사람은 유동적이지만, 장소는 고정적인' 불안한 공간(그러나 어쩌면 꽤 진부한 소재인) 을 중심으로 하며 이 공간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진화되며 어떻게 스러지는지 슬프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서사를 구성한 소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버리거나 (아이, 사랑, 돈, 가족 등..) 스스로 버림 받는 이들인데, 모텔이라는 공간은 그 '버림'의 상처가 '은밀한 관계' 라는 일탈적 '채움' 으로 보상받는 곳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채움 속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은 또 다른 '버림'을 통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끝없는 악순환의 과정을 지내게 된다. 

그러나 결국 용서라는 과정을 통해 버려진 이들은 스스로 '채움'을 획득하게 되고 소설은 나름 따뜻한 결말을 성취하려고 한다. 물론, 내게는 이 '용서'의 과정이 무척이나 비논리적이고 모자라 보이기에, 좋은 소설을 요건을 모두 갖추었지만 전형적인 용두사미의 서사를 보여준 아쉬운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긴 하다. (사실 이건 내가 요즘 좀 감정적으로 메말라서 그리 보일 수도 있겠다)

어쨌튼 새로이 등장한 여성 작가의 소설 치고, 너무나 잘 읽히고, 좋은 구성과 캐릭터를 갖춘 데다가, 칙릿과 부르주아적 감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썸업'을 강하게 외치고 싶다. (그렇다고 그 정이현 류의 소설이 싫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읽는 재미는 그쪽이 더 있긴 하지)

(201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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