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에서 개인으로, 구조에서 주체로 주도권이 넘어간 서양 문학의 기조 속에서 가장 빛났던 여성 작가 중 하나인 아니 에르노. 내가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아멜리 노통 문학의 직계 선배라 해야 할까 싶다.
1991년에 나온 자전적 소설인 '단순한 열정' 은 사실 제목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문학 교수인 그녀 본인이, 파리에 온 러시아 유부남 외교관과 저지르는 불륜에 대한 내용. 그러나 그것을 '불륜' 이라 표현할 수는 없다고 강변하는 듯, 모든 도덕 위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표현들은 대담하고 감각적이며 섬세한 감정의 선을 때론 무겁게, 때론 경쾌하게 타고 있다.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만들 수 있는 부가적인 것들. 집착, 권태, 후회, 허무함 같은 이야기들을 비슷한 장소, 비슷한 사물을 이용해 풀어낸다. 한 번이라도 열정적인 사랑이란 것을 해 본 사람들은 아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컵, 그릇, 담배, 맥주 같은 평범한 사물 속에 그대들과 똑같은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직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니 에르노 스스로가 밝혔듯, 이 책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에 입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내면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드러내려고 한 데서, 문학 위의 문학을 표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란한 문체나 플롯의 제작, 인물들간의 복잡한 구조를 반영한 현실세계의 복제, 뭐 이런 문학의 다른 가치들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개인의 내면에 하나부터 끝까지 천착한 글쓰기를 지향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의 일반적 규범은 소설 속에서는 되레 폐기되기도 하며, 50대 여성의 주체적 글쓰기 속에서 사회적 시선은 그저 어린애들의 장난같이 대범히 넘길 수도 있는 권태로운 것일 뿐이다.
재밌는 것은, 아니 에르노가 실제로 있었던 이 '불륜(이 번역된 단어 속에 아닐 부 자가 들어가는 것을 작가 본인은 내켜하지 않겠지만..)' 을 책으로 낸 5년 후에, 아니 에르노와 사귀었던 필립 빌랭이라는 남자가 이 책의 모든 형식을 똑같이 따라하며 주인공만 본인과 아니 에르노로 바꾼 '포옹' 이란 소설을 냈다는 것. (33세 연하남이란 게 더 놀랍지만, 이 정도로 매력적인 글을 쓰는 사람은 나이따윈 상관없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자연스럽게 필립 빌랭의 소설을 주문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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