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김남주의 에세이 '나의 프랑스식 서재'를 읽고, 가장 깊게 울린 책은 역시 아멜리 노통의 '오후 네시' 였지만 (내 20대에 가장 영향을 준 책 중 하나이다)
어쩌면 이 책과 만나기 위한 한 단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이 유명한 책을 사실 읽어보지 않았다는 변명보다는, 읽기에 너무 아까워 아껴 놓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열정과 냉정한 현실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연인들의 심리를 이보다 더 잔혹하고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서른 아홉의 매력적인 여성 폴이 스물 다섯살의 젊은 청년 시몽을 만나면서 시작되는 삼각관계.
그들은 브람스의 콘체르토 공연을 보러가서, 마주친 서로의 팔꿈치에서 기묘한 관계가 시작됨을 느낀다.
# 전환적 인연이 시작된 장소는 '플레옐 홀'. 파리 오케스트라의 주 무대인 이 곳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등장한다.
작년 10월에 플레옐 홀에서 멘델스존의 '이탈리안 교향곡' 을 감상했던 때가 자연스레 떠올리며 소설 속 폴과 시몽의 자리 주변 어딘가에 나도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 소설속에 등장하는 '브람스의 콘체르토'는 과연 무엇일까.
브람스는 생전에 피아노 협주곡은 두개, 바이올린 협주곡은 하나, 그리고 더블 콘체르토 (바이올린+첼로) 한 곡을 남겼다.
소설 속에서는 그냥 '콘체르토' 라고만 나오고 있어서 부득이하게 추론할 수 밖에 없을 터인데, 폴은 '조금 비장하게, 때로는 지나치게 비장하게 여겨졌다'고 음악을 묘사한다.
그리고 '바이올린 한 대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누르고 솟아올라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필사적으로 떨더니 이윽고 저음으로 내려와서는 즉각 멜로디의 흐름속으로 빠져들며 다른 소리들과 뒤섞였다' 는 대목에서 바이올린 콘체르토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한다.
11월에 율리아 피셔가 내한해서 브람스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연주한다 하니, 과연 폴이 들었던 것처럼 비장하고 또 비장한,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인지 기대된다
# 왜 브람스인가
브람스는 프랑스인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곡가이다. (바그너보다 더 싫어할지는 모르겠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고, 묵묵히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다(고 추정된다)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15세 연상으로, 소설 속 시몽과 폴의 나이차 14세와 비슷한 구도를 가진다.
하지만 열정보다는 인내, 과묵함의 상징이었던 브람스와, 소설 속 빨려들어갈 듯 하게 소모적인 시몽의 이미지는 좀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다.
# 왜 샤갈인가
민음사의 번역본 표지에는 샤갈의 'the birthday'가 인쇄되어 있다.
왜 샤갈인가.
바닥에서 붕 떠 있는 남자, 어쩔 줄 모른채 꽃을 들고 달려가는 여자.
작은 방에 어지러이 흩어진 물건들. 이 좁은 그림 속에서 샤갈이 추구한 혼돈적 사랑의 이미지와 프랑수아즈 사강의 파괴적 열정이 겹쳐진다.
(201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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