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소설의 제목, 너무 궁금했다.
그것이 작중 화자의 이모가 1984년, 사랑의 도피를 위해 피신해온 정방동 136-2 번지 단칸방의 함석지붕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였다니. 사월에는 낮은 미, 칠월에는 솔, 만일 그 남자의 아내가 오지 않았다면 십일월에는 높은 시까지 올라갔으리라 회상하는.
(1984년에 세 살이었던 나는, 정방동 412-16에 살고 있었다. 기억은 아주 희미하나 사촌누나들이 나를 보러 매일같이 왔었고, 비새는 틈을 메우러 부모님이 동분서주할때 나는 푸른색 옷을 입고 장난감 말을 탔었다. 김연수 소설의 그 곳과는 지척인 그 곳.)
주인공인 이모가 그 남자와, 남자의 아내와 마지막으로 식사했고, 29년이 지난 후 남자의 아들과 다시 만나 과거를 회복하는 문제의 장소는 정방동 472-1 번지에 있는 '덕성원' 이다. 소설 속 갈등이 엮이고 해소되는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지금은 그만둔 회사 동기가 무척이나 그 곳의 게짬뽕을 사랑했다. (이런 우연같은.. 지금 제주에 놀러온 그놈이 제일 먼저 간 곳은 역시 덕성원이라고)
이렇게 소설은 또 삶과 제각각 연결되나 보다.
김연수의 소설을 읽은 것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부터였는데, 이후 그의 책은 내가 가장 많이 선물하는 것이 되었다. (아멜리 노통의 소설과 함께) 그 극한으로 다듬은 문장의 아름다움, 알쏭달쏭하지만, 결국엔 선인도 악인도 아닌 그냥 인간의 모습을 한 등장인물들, 변함없는 회색 도시와 다채로운 시골. 그런 따스한 조화가 소설속에 있었고, 이번 소설집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소설 > 한국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혀 끝의 남자' 백민석 (0) | 2014.01.06 |
---|---|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0) | 2014.01.03 |
'2013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0) | 2013.12.23 |
'단 한번의 연애' 성석제 (0) | 2013.12.23 |
'그들에게 린디합을' 손보미 (0) | 2013.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