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장편 세권에 대한 이야기.
(알랭 드 보통과 쓴 '연인들'은 제외. 보통과 비견되면 정이현이 너무 보통작가처럼 보일까봐.)
1. 달콤한 나의 도시
일단, 드라마 안 보길 잘했다 생각하면서 시작.
(그러나 지현우와 이선균은 나이스 캐스팅. 최강희는 미스 캐스팅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나이가 서른 하나,둘 이므로, 2005년의 소설을 8년쯤 묵혀놨다 지금 읽는 게 적절하다는 생각도. 그래야 서른둘, 2013년의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을터니. 소설은, 발랄하고 현대적인 문체 속에 숨겨진 씁쓸함이 짙고. 문장 속에 가득한 도시인의 허무함. 속물의 한계를 체감하는 절망이 존재하였다.
# 그럼에도 몇 개의 소소하게 빵 터지는 구절
"여자들은 왜 연애 초기만 지나면 다 마누라처럼 구는거지?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너의 실존을 변화시켜서 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봐라, 왜 그런 요구들을 하는 거냐고."
"......자기는 나를, 왜 사랑해요?"
왜? 백스물두 가지의 이유들과, 깜깜한 암흑이 번살아 교차했다. 나는 대답을 단념하고 마지막 한 조각의 딸기타르트를 입에 넣었다.
우리의 오른손들은 공중에서 굳건하게 서로 만났다. 섹시한 접촉은 아니었다. 그것은 뭐랄까, 동지적인 악수였다. 공연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기라도 하는 듯한.
2. 너는 모른다.
달콤한 나의 도시 보다 더 음울하고 심오해졌다. 이전 작품보다 굉장히 문체가 늘어졌고 복선에 집착하고 단어의 배치에 신경쓰는 느낌. 좀더 복잡하게 인물들의 관계는 꼬이고 캐릭터는 단단하지만 어려워졌다. 전작보다는 더 여성적인 기분이 덜어진 느낌.
# . 복잡한 마음을 주는 구절들.
선택의 순간에 왜 친엄마의 집으로 가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혜성은 "그냥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라고 대답했다. 옥영은 녀석이 좋아졌다.
연주에 몰입해 있는 순간, 그 몰입 안에서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순간에 아이는 미처 계산하지 못한 기쁨을 느꼈다. 요즘 연습하고 있는 곳은 쇼팽이었다.
☞ 이 부분에 왜 주목할 수 밖에 없냐면, 이 소설 속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이 아이는 바이올린을 연습하는데, 쇼팽은 평생 바이올린 곡은 쓰지 않았던 피아노 비르투오소 였기 때문이다. (첼로 소나타나 피아노 콘체르토, 관현악을 포함한 폴로네이즈는 있지만..) 즉, 11세의 아이가 연주할 만할 쇼팽의 바이올린 곡이라면 거의 후세에 자주 바이올린 곡으로 편곡되어 변주된 녹턴일 가능성이 높은 듯 하다. '쇼팽의 바이올린' 이 작은 구절은, 작가가 의도했다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부유하는' 느낌을 주는 장치인데, 사실 화교의 아이이고, 왕따를 당하고, 행복하지 않은 가정에 있다 말없이 가출한 이 아이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키워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안녕, 내 모든 것
삼풍백화점, 서태지, 김일성 사망, PC통신 등 90년대 중반을 상징하는 키워드들이 소설 전반에 등장한다. 의외로 흔히 보기 힘든 90년대의 이야기. 세 소설 중 가장 현실적 사건들을 담아내고 있지만, 가장 비현실적 이야기.
# 어쩌면, 정이현 소설의 대목 중 앞으로 가장 유명해 질 것 같은 구절.
"김일성이 죽었다"
(이 소설의 첫 문장)
++정이현 장편 세 작품서 발견한 몇 가지 코드.
# 아르마니-명품과 아우디-자동차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물적 상징들. '달콤한 나의 도시' 에서는 아르마니는 손대기 힘든 허영의 상징. '너는 모른다' 에서는 일상적 소품. '안녕, 내 모든 것' 에서는 백화점에서 대충 구겨넣는 것.
'달콤한 나의 도시' 에서 등장하는 자동차는 국산 중형 세단과 마티즈. '너는 모른다' 에서는 아우디. '안녕 내 모든 것' 에서는 이름을 굳이 안 밝혀도 될 재벌의 '대형 검정 세단'
# 혓바닥
남의 혓바닥을 통해 쾌락의 본질을 비로소 느꼈던 '달콤한 나의 인생'
시체의 혓바닥이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궁금해했던 '너는 모른다'
나의 백태가 낀/고모의 백태가 끼지 않은 혓바닥이 등장하는 '안녕, 내 모든것'
쾌락과 관계를 상징하는 혓바닥이란 코드를 다양하게 삽입
# 섹스
또한 중요한 코드로 쓰이는 장치.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30대 직장인의 평범한. 그러나 완벽해질수 없는 정신적 욕망' 정도로 다뤄졌다. (그러나 극화를 염두에 둔 것처럼 너무나 세밀한 묘사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너는 모른다에서 섹스는 또한 잠시의 허무한 정신적 일탈의 초상처럼 그려진다. 주요 화자인 의대생 혜성은 아예 (무언가 모르는 힘에 의해) 섹스를 거부하기도 한다.
'안녕, 내 모든 것' 에선 아예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쯤' 으로 그려지고 있다.
# 관계
정이현의 '인물' 은 사실 복잡한 구도는 아니다. 소설의 초반에는 헛갈릴 수도 있지만 결국 종반에는 '나의 사람' 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분화되며 중심 화자의 상태가 어떻게 결말이 나든 그 관계가 심하게 훼손되지는 않으며, 관계의 지속은 발랄한 문체속 숨겨진 허무함을 많이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독자는 최소한의 심리적 안위는 확보한 채 소설을 덮게 된다. 정이현이 마련한 최소의 배려일까. 혹은 강력한 주장일까.
# 점층적 신분상승
작가는 이렇게 자신의 소설을 읽으면 화가 날 지도 모를 테지만, 분명히 정이현 소설의 중심 화자들은 그 속해있는 계층적 둘레와 이야기의 중심 무대를 고조시키고 있다. 평범한 서울 직장인 > 강남 졸부 > 성북동 재벌.
물론 그럼에도, 가장 심리의 최저층. 내면의 깊숙한 인간의 고민을 똑같이 놓치지 않는다는 건 대단한 스킬.
# 정리
요컨대, 세 소설에선 차례로 물적 상승과 정신적 하강의 역함수 그래프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그래도 마지막 끈은 잡아야 하는 것처럼 마이너스로 그래프가 떨어지지는 않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다고는 느끼지만. 여전히 등장인물들의 위악적 비정형성은 조금 거슬린다. 최근 한국 소설들의 트렌드인가. 나를 닮은, 어디에나 '있음직한' 인물들이 '그럴것같음직한' 행동을 벌이다, 소설에 어느 정도 빠져들고 나면 어느 새 비현실적 세계 속으로 흡입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작가도 찜찜했을까. 마지막 소설 '안녕, 내 모든 것' 에선 아예 대놓고 세 주인공이 모두 '이상한 애들' 임을 알리고 시작한다. 맞다. 그게 덜 불편하다.
# +1
'달콤한 나의 도시' 에서 주인공 은수의 원룸 위층 305호 여자가 애인에게 목이 졸린채 기절하는 사고가 나온다. '너는 모른다' 에서는 주인공들의 주변에서 '목이 졸린 여자가 숨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났다' 는 대목이 나온다.
# +2
김영수, 김상호, 김태식
세 소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 흔하디 흔해, 되레 아무도 안 쓸 법한 이름들. 그들은 온갖 부정적 남성의 초상들이며 거대한 권력이지만 초라한 속물이다.
# 어쨌튼, 지금 한국문학에 그나마 정이현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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